#1.
이금이 님의 [벼랑]을 읽었다.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읽었던 건데, 읽기전에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좋았다. 생각보다 어둡지도 않았으며, 내가 이들의 선생님이었다면 어떻게 대했을 것인지, 어떻게 대해주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것 같다.
#2.
<이상한 아이, 은조>
은조는 학교내에서 '이상한 아이'로 통한다. 진정한 삶을 꿈꾸지만 그것을 잡을 수 없고, 잡지 못하게 누르는 제도권을 견뎌내지 못하는 것이다. 대학을 위해 의미없이 공부하는 것보다는 미술 도구를 보고, 만지고, 또 그림을 그려보는 일이라든지, 블로그를 통해 교류를 갖는것이 은조에게는 의미있고, 행복한 시간이다.
자퇴를 결심한 은조와 엄마 사이의 대화에서 은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엄마한텐 정말 미안한데, 그래서 견뎌보려고 했는데, 엄마, 난 이제 겨우 열일곱 살이야. 난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아. 그림도 그리고 싶고, 글도 쓰고 싶어. 철학자가 되고 싶기도 하고, 역사학자가 되고 싶을 때도 있어.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그 길을 찾아야 할 때잖아. 그런데 학교에선 공부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말래. 나는 그렇게 교과서나 암기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 엄마, 이걸 방황이라 불러도 좋고 치기라 해도 좋아. 나중에 후회하더라도 당장은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일들, 아니 해야 할 일들을 해 보고 싶어. 학교가 못 하게 하니까 나 혼자서라도 해 보고 싶다구!"
삶의 한 순간 한 순간을 자신의 것으로 느끼며 살아가길 원하는 은조.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도 많은 열일곱의 나이. 은조의 대사를 보면서, 오랜 시간 머릿속에서 고민해왔고, 여전히 진행중인 그 질문이 떠올랐다.
"공부를 하지 않는 학생을 다른 길로 이끌 것인가, 공부를 시킬것인가."
이렇게 적어넣고 보니 꽤나 재미없어져 버렸지만, 어쨌든 이 문제는 교사를 꿈꾸는 사람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된다. 전자가 되었든, 후자가 되었든 학생은 훗날 후회할 수도 있고, 그 길이 옳았다고 가슴을 쓸어내릴 수도 있다. 하지만, 현실과 타협하기엔 열일곱의 가슴에 있는 꿈과 열정이 너무 크고, 아깝다.
나는 내 제자가 될 그 아이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아이가 지금 공부를 하지 않음으로 겪게 될지도 모르는 불리함을 묵인할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역시나 쉽지가 않다.
기타) 블로그, 싸이 - 내면을 투사하는 유리창 / 복잡한 감정의 배출구 / 허세와 자기 합리화
현실을 보여주는 것과 가슴속에 낭만을 품게 하는 것.
<현대인의 전형, 이진>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겨우 필리핀 유학을 오게 된 아이 이진이는, 질투와 열등감, 현실에 대한 불만, 위에 올라서려는 심리, 의심, 계산적인 인간관계. 현대인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앞에 나온 은조와 정반대에서 현실에 물든 이진이의 모습은 너무도 안타까웠다.
제도권의 압력 속에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이라는 것을 위해 공부하는 수많은 아이들. 이 아이들이 좀 더 밝고 따뜻해질 수 있게, 가슴속에 낭만을 품어볼 수 있게 어른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겉으로는 아무 일 없어보이지만 가장 치료가 필요한 이는 어쩌면 이진이와 같은 아이들이 아닐까.
어찌되었든, 이 책의 끝에서 이진이는 비루한 말이 담고 있는 꿈과, 문명속에 가려진 생명과 낭만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 웃을 수 있어서 좋았다.
<노는아이, 난주>
난주는 소위 말하는 불량학생이다. 외적인 것에 집착하고, 몸까지 팔게되고, 옥상에서 친구를 떠미는 모습은 다소 과장되어 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난주의 모습이 한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 어딘가에 충분이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러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혼자가 된 난주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따. 자신은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주겠다는 어른이 있었다. 그저 아르바이트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창호한테 절절매야하지? 규완한테 가서 먼저 말할까? 다 자기랑 만나려고 그런건데. 규완이 헤어지자면 헤어지지 뭐. 아니, 그보다 어른한테 말할까? 엄마, 아빠, 선생님들,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했던 치킨집 사장님, 경비원 아저씨..... 야단칠 때는 줄지어 있던 어른들이 도움을 청하려고 둘러보자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고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자신이 자기것이라는 생각 따위를 해본 적이 없었는데, 임대 아파트나 메이커 교복 같은 것들이 자기를 말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자신은 온전히 자기것이었다."
그 아이는 어렸고, 자신이 자신의 것임을 깨닫지 못했다. 자신을 소중히 해야하는 이유와 방법을 배우지 못했던 것이다. (작가의 말에도 나와 있듯이) 태어났을 때는 누구보다 천진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을 텐데, 무엇이 이 아이로 하여금 옥상에서 친구를 밀게 한 것일까.
나는 또 상상해본다.
내가 이 아이들을 치유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것이 바른 길 일까.
우선 나부터가 불완전한데...
지금으로서는 그저 나를 때리고, 때려서 다듬으며 기다릴 뿐이라는 미적지근한 것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부끄럽지만, 언젠가 교사가 되어서 이 아이들이 내 앞에 왔을때에는 도망치지 않을 것이며,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기타) 스튜디오 아저시 개XX.
<선우, 희수, 민재>
꿈을 찾는 아이들, 현실과 꿈 사이에 한 발씩 놓은 아이들.
#3.
막 갈겨썼더니 앞뒤 문장도 안맞고 정신이 없네;; 나중에 수정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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